Kayip 정규앨범 'Theory Of Everything'
발매일 : 2011/08/25
제작 : 루오바 팩토리
배급 : 루오바 팩토리

YI SUNG YOL [ Kayip 정규앨범 'Theory Of Everything' ]

Track List
01. Across (Feat. 이승열)
03. In The End (Feat. 이승열, 김진아)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윤상, 이상은, 이승열 등 국내외 대형 뮤지션들 사이에서 내놓은 영민한 작업들로 지금 가장 뜨거운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카입, 그 첫번째 국내 정규앨범!!
 
재일 한국인이 주인공인 영화 ‘GO’는 이런 대사로 시작된다. "이건 나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열의 아홉은 고개를 끄덕일 문장이지만, 일본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핏줄의 모습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시크한 시작이다. 아마도 '재일 한국인'이라는 단어에서 조국, 민족, 국적 같은 단어를 무심코 길어 올린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이 앨범 [Theory of Everything]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이 앨범은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가 아니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윤상, 이상은, 이승열 등 국내외 대형 뮤지션들 사이에서 내놓은 영민한 작업들로 지금 가장 뜨거운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인 그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역시 당황스러울 이야기다. 하지만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앨범을 듣고 나면, 당신도 분명 고개를 끄덕이고 말테니까.
 
기계적인 테크닉이 아닌, 기본에 충실한 고전적인 송라이팅으로 만들어낸삶과 인간을 노래하는 진보적인 일렉트로니카. 우리 모두 카입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잠시 잊자. 앰비언트, 글리치, IDM? 그냥 넣어두시라. 현대 물리학에서 찾고 있는 모든 것의 시작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하는 기본 이론 'Theory of Everything'를 타이틀로 내세운 이 앨범은, 제목 그대로 카입의 지금까지의 작업들 중 그 '기본'에 가장 충실하다. 그 기본은 참으로 새삼스러운 '노래'다. 최근 몇 년간 사운드적인 아이디어에서 곡의 시발점을 찾아왔다는 그는, 이번에는 고전적인 송 라이팅의 형태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작은 소리들을 쌓아 눈에 보이는 큰 형태를 만들어 온 것이 이전의 작업들이었다면, 이번에는 덩그마니 놓인 도화지 한 장을 소리들이 천천히 메워가는 식이다. 덕분에 이 앨범은 최근 몇 년 간 카입이 세상에 내놓은 작업들 중 가장 알기 쉽고 명확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어지러운 소리의 안개에 가려있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언젠가 본 인터뷰에서 "풍경을 그리는 느낌으로 소리에 접근한다"는 카입의 말에 고개를 갸웃한 적이 있다. 그 동안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풍경보다 그 손가락에 정신이 팔려있던 탓이다. 이제는 갸웃한 고개를 바로 세운다. 범인(凡人)들에게 좋은 노래의 힘이란 이렇게나 위대하다.
 
압도적인 이승열의 보컬과 몽환적인 사운드가 더없이 어울리는 “Across”로 시작해 반복되는 단순한 멜로디와 빗소리로 앨범의 문을 닫는 마지막 곡 "Going Nowhere"까지, 카입이 왜 이 앨범을 '기술'이나 '소리'가 아닌 '인간'과 '삶'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오랜 시간 숙련해 인정받아온 기술(테크놀로지)은, 적어도 이 앨범에서는 그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 랩탑으로 구성된 가상의 밴드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는 앨범의 노래들은 매번 우아하고 쓸쓸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덕분에 앨범을 듣노라면 어느새 경계를 늦추고 어젯밤 이야기를 털어놓는 우리가 있다. 늦은 밤 도심을 가로지르는 버스 안, 집 앞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어느 지친 저녁, 그리워할 누군가도 불분명해진 외로운 아침, 언제 어디든 상관없다. 우리는 오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위로 받고, 위로 한다. 이제는 진부해지기까지 한 이 위로라는 단어를 카입의 앨범에서 찾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생을 산다. 어떤 누군가는 갓난아기가 본능적으로 옹알이를 하듯 손쉽게 그 능력을 얻지만, 다른 누군가는 평생 답을 찾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한다. 카입이 얼마나 먼 길을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앨범을 듣는 순간, '노래'를 만드는 그가 달변은 아니어도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게다가 이 이야기꾼,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재주도 탁월하다. 아마 당신도 앨범을 듣는 순간 이 반가운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순한 테크니션을 넘어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뮤지션의 또 다른 발견이다. 이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