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싱글 '라디라'
발매일 : 2011/08/05
제작 : FLUXUS MUSIC
배급 : KT MUSIC

YI SUNG YOL [ 디지털싱글 '라디라' ]

Track List
01. 라디라


불온한 꿈을 떨치고 구원의 선율을 찾아 나선 예인,

이승열, 그의 두 번째 복음, “라디라”

‘그들의 blues(feat.한대수)' 이후...

그의 첫 번째 복음, 또는 전언을 우리는 이미 들은 바 있다. 아득바득 살아봐도 정신 차려보니 헌신짝 같은 몸뚱이만 남은 허다한 인생들을 소집한 그는 하필이면 유유자적하니 차가운 타령을 불러주었다. 쉰 막걸리 냄새 풍기는 허허실실 늙은 히피도 대동했다. 사뭇 퇴폐적인 캬바레(?) 블루스와, 격정의 가스펠 코러스를 적잖이 신명나게 펼쳐냈다. 그러면서 그것이 ‘우리네 블루스’라고 했다. 아무튼, 그가 폐허 위에 만들어 준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노인과 개는 천진하게 뛰어노는데, 정작 햇빛 아래 다소 멀찍이 서 있는 그는 어딘지 의뭉스러웠다.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까지 닥치는 대로 찾아 매달리며 ‘한없는 복을’ 구걸했다더니 태도가 좀 삐딱해 보이기도 했다. 소원대로 지복을 얻어 세상이 만만해졌나. 해서 아직 세상이 만만치 않은 인생들이 가소로워진 건가. 영문을 모르겠다. 약도 좀 오른다. 그러나 우선은 그의 두 번째 복음, 또는 전언부터 들을 일이다. 그리고 오해를 씻을 일이다. 세속의 거친 물길에 휩쓸리면서도 끝끝내 의지할 부표 하나를 찾아 온 그가 이제 막 자신의 목울대를 덥히기 시작했으니.

멸망으로 열고 닫는 세상을 견디는 여흥구: 라디라

잔물결처럼 깔리는 어쿠스틱 기타와 물안개처럼 퍼지는 일렉트릭 키보드. 그 위에서 그는 누군가를 향해 서늘하니, 관조하듯 말을 건다. 부담 갖지 말라고, 편하길 바란단다. 명상적인 포크록으로 시작한 음악은 이내 강건한 거라지 풍 사운드를 동력 삼아 그를 성층권의 음역으로 쏘아 올린다. 이내 그는 뜨거운 팔세토로 위무한다. 몰락의 선고를 받은 위태로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며. ‘벼랑 끝에 선 데도’ ‘너의 노래’를 부르란다. 그리고 허망을 극복할 비밀스러운 여흥구를 가르쳐준다. 라디라. 라디라. 시내가 강이 되고 강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한 줌의 이슬로 증발하는 과정을 닮은 음악의 과정을 한 줄로 꿰는 것은 선仙적으로 아롱지는 루프의 울림소리이다. 그 소리도 서서히 하강해 도회적인 재즈 야상곡에 가 머문다. 벼랑 끝에 선 자를 도시의 밤으로 되돌린 것일까. 어쩌면. 그래도 그는 잊지 않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그들)은 과연 비겁지만,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너라고.

그렇게 몰락이 아닌 희망을 상상하고, 저주가 아닌 노래를 하자고. 라디라. 라디라.

이승열의 세 번째 음악세계에 대한 두 번째 예고편.

알려진 대로 “라디라”는 이승열의 세 번째 솔로 앨범 [why we fail]을 위한 두 번째 예고편이다. 삶의 비극성을 경쾌하게 무화시키는 역설의 블루스 록을 들려준 첫 번째 예고편(”그들의 blues(feat.한대수)")에 이어, 이번에는 중심을 잃은 여린 존재들에게 일종의 구도적 송가anthem를 들려준다. 이십 년 가까이 ‘유앤미블루’와 같은 밴드부터, 솔로 및 여러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결을 보여주었던 그의 음악은 단일한 좌표를 심는 것이 만만치 않은데 이 송가도 예외는 아니다. 포크와 하드록, 블루스, 재즈와 명상음악이 선형적으로 합세하는 이 온유한 파워팝을 가령 스타디움에서 떼창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송가 아닌 송가. 이는 곧 이승열의 음악세계를 설명해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꼭지점처럼 우뚝 선 클라이맥스를 위해 나머지 요소들이 오체투지하는 이른바 후크송은 한 번도 그의 관심사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대신 순환적인 구조 속에 여러 요소들을 긴장감 있게 배치해 나가며 총체적이고 서정적인 서사를 획득한다. 이 위에 실리는 이승열의 ‘비선형적인’ 목소리가 마침내 은근한 파격을 부여하고, 매혹적인 여운을 남긴다. 그는 냉소적으로 읊조리는 것 같을 때 더없이 신실하고, 체념해 마지못한 듯 음을 끌어올릴 때 가장 정열적이다. 그 수굿한 자가당착이야말로 그답다. “라디라”를 만드는 내내 멸망을 생각했었던 그, 삶의 허망과 싸우다 종래 삶과의 접속을 아예 끊으려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던 그, 그래서 애써 폐허를 놀이터로, 절망을 신명으로 바꾸어 놓은 후, 그들을 초대했지만 정작 자신은 함께 놀기보다 멀찍이서 가만히 지켜보는 쪽을 더 좋아하는 그 말이다. 그런 게 구도자의 겸허와 긴장인가 보다. 그의 네 번째 전언은, 장담컨대 고대하셔도 좋다.

- 글: 최세희 (음악칼럼니스트, 번역가) -